첫 번째 밥상공론 ‘Real bread'
유난히 추웠던 날, 따뜻한 빵과 함께
2월 8일 수요일, 신사동 ‘더 반 베이크 스튜디오’에서 첫 번째 밥상공론이 있었습니다.
포스터와 현수막을 걸고, 냅킨과 포크, 나이프, 수제 잼, 접시, 테이스팅 시트와 빵들을 세팅하고 따뜻한 커피도 준비해 참가자 분들을 기다렸습니다. 갓 오븐에서 나온 14가지 빵들의 따뜻한 온기와 향이 도착한 분들의 식욕을 자극했습니다.
7시 15분, 유난히 추운 날이라 그런지 참가자분들의 도착이 늦어져 조금 늦게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노민영 대표님의 ‘푸릇’과 밥상공론에 대한 소개에서 이호영 쉐프님의 빵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빵의 문화는 빵을 만드는 사람 혼자서 해낼 수는 없는 일이며 이 자리에 오신 분들과 함께 바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또, 우리밀로 빵을 만들 때의 고민들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우리밀이 상대적으로 값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어서 우리밀로 만드는 품목들은 가게에 있는 제분기로 직접 밀을 제분해서 쓰신다고 합니다.
5년 묵은 천연발효종으로 만든 14가지 빵
이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이스트 자체가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지만 더 좋은 빵의 풍미 때문에 천연발효종을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현재 쉐프님이 가지고 계신 발효종이 5년 묵었다고 말씀하시자, 테이스팅 할 빵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커졌습니다. 참가자들 중 빵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정도로 빵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발효종의 재료와 과정에 관한 많은 질의응답이 오가는 도중, 우리밀빵 전문가로 참가하신 분께서 자신의 발효종을 나누어 주겠다고 하시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어주시는 흐뭇한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사실 동네빵집의 중요성을 알고 더 좋은 빵을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늘었지만, 그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작은 힘들이 모여 더욱 탄탄한 힘을 만들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이야기들은 테이스팅 후 좀 더 깊이 하기로 하고, 테이스팅을 시작했습니다. 쉐프님이 만드신 빵부터 시중 빵까지 총 14가지의 빵을 테이스팅 했습니다. 첫 번째로, 소금의 종류만 다른 빵 두 가지를 맛보았는데, 갸우뚱하며 뭔가 맛이 다르다고 저절로 나누어지는 대화 속에 점점 어색함이 사라졌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 만날 때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하는데, 함께 무언가를 먹는 행위가 바로 이렇게 서로의 친근감을 생성해주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감을 살려 빵 맛보기
빵의 향, 껍질(크러스트), 질감, 빵을 자를 때의 소리까지. 오감을 동원한 진지한 테이스팅이 이어졌습니다. 소금의 종류가 다른 빵, 밀의 종류가 다른 빵, 발효정도가 다른 빵, 여러 종류의 발효종 빵, 호밀의 함유량이 다른 빵 등 미묘하게 다른 빵조각들을 코 가까이에 대고 한참 향을 맡아보기도 하고 손으로 찢으며 질감을 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씹으며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미리 세팅해둔 테이스팅 시트에 나름대로의 느낌과 차이점을 적어가며 중간 중간 버터와 치즈, 잼들도 함께 즐겼습니다. 빵을 직접 만드시는 분들은 평소 빵집에서 할 수 없었던 중량이나 수분량, 과정 등 좀 더 전문적인 궁금증들을 풀어 놓으셨습니다.
팔당에서 우리밀 빵을 생산하시며 친환경 농사도 지으시는 한 참가자께서는 우리밀의 특징이나 유기농 밀에 대한 지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쉐프님도 소비자와 여러 생산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맛있는 테이스팅이 진행되는 도중 비교 차원으로 준비한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과 마트의 포장 빵을 맛보았습니다. 갑자기 서빙되는 새하얀 빵들에 생소한 듯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진한 마가린 향과 씹을 새도 없이 삼켜져 버리는 빵을 직접 맛보니 좀 더 확연하게 비교해 볼 수 있었습니다.
빵 문화에 대한 이야기
테이스팅이 모두 끝난 후 자연스레 첨가물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시중 빵의 첨가물들은 베이커들에 의해 첨가되는 것이지만 대부분 제과제빵기능사 시험을 본 후로부터 ‘첨가물은 꼭 필요한 재료’로 인지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제빵사들을 위한 배움의 공간도 생겨야 한다는 고민과 함께 현재 업계에 있는 사람들의 공부가 무척이나 부족하다는 전문성에 관한 이야기도 쉐프님께서 덧붙이셨습니다.
질의응답시간이 전문가-소비자 양방향으로 이루어지고 뿐만 아니라 전문가-전문가, 소비자-소비자간 에도 이루어지는 모습이 참으로 흥미로웠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의 공유로 한층 풍부해진 ‘밥상공론’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의 베이커리 업계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외국으로 수출될 만큼 성공적이고 세계적인 사례인 건 사실이기 때문에, 각각의 베이커리가 서로의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좋은 빵을 고집하는 장인들의 빵집도 있어야하고 그렇지 않은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도 함께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동네빵집이 있었는데, 그것이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뀌어 더 이상 그 빵맛을 느낄 수 없어 마음 아프다는 한 참가자 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 빵을 팔던 가게를 접고 프랜차이즈 빵집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을 그 빵 장인의 마음은 어땠을까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생산자 소비자 모두의 노력
좋은 먹거리를 위해서는 한 사람이 아닌 생산자, 소비자, 전문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며 훈훈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의 맛을 경험하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새로운 접근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밥상공론은 새로운 주제로 맛보기와 이야기시간을 계속 마련할 것입니다.
글/사진: 푸릇 장시내